작성일 2009-05-08 (금) 15:14
분 류 평간공계(平簡公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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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공 한상덕(參判公 韓尙德 : ?∼? 12世)
公은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문신(文臣)으로 公의 諱는 상덕(尙德)이요 자(字)는 계덕(季德)인데 이는 목은 이색(牧隱 李穡) 선생(先生)이 지은 한씨사자설(韓氏四子說)에서 볼 수 있다. 公은 학문(學問) 높기로 이름난 유항(柳巷) 문경공(文敬公 脩)의 넷째 아들이요 고려 공신(高麗 功臣) 평간공(平簡公 公義)의 손자이다.
음사(蔭仕)로 종부시승(宗簿寺丞)이 되고 1385년에 과거(科擧)에 합격하여 태종 9년 (1409) 사간원 지사(司諫院 知事), 승정원 승지(承政院 承旨)를 거처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치사(致仕)하였으나 간관(諫官)과 승지(承旨)의 자리에 있을 때 남긴 실록(實錄)이 특별(特別)하므로 전재(全載)하여 후일(後日)의 참고(參考)가 되기를 바란다.
《국조보감(國朝寶鑑)》에 다음과 같이 기록(記錄)되어 있다.
太宗 9년 太宗이 광연루(廣延樓)에 나아갔는데 사간원 지사 한상덕(司諫院 知事 韓尙德)이 나아가 아뢰기를 “순(舜)임금은 성인(聖人)이었으나 호도(皐陶)는 단주(丹朱)처럼 오만하지 말라고 경계하였으며 당 태종(唐 太宗)도 영명(英明)한 임금이었으나 위증(魏徵)이 수 양제(隋 煬帝)처럼 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는데 지금 신(臣)도 신우(辛禑)처럼 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싶습니다. 전하(殿下)께서 오래도록 정사를 보지 않으셨는데 신의 생각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여깁니다”하니, 太宗이 말하기를 “나는 이 철만 되면 늘 안질(眼病)이 발생하였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이다”하였다. 韓尙德이 말하기를 “정성으로 大國을 섬기고 위엄으로 왜구(倭寇)를 막음으로써 太平時代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스스로 경외(敬畏)하여 사방을 두루 살펴보고 사방의 말을 널리 들어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불초(不肖)한 사람을 물리칠 것이며, 편안해도 위태로움을 잊지 말고 잘 다스려져도 어지러움을 잊지 마소서. 그렇게 하면 오늘날의 치정(治政)이 三王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하니, 太宗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三王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는가?”하였다. 韓尙德이 말하기를 “殿下의 正心과 성의(誠意)가 天地의 덕(德)과 합치(合致)되었으니 ‘내가 불민(不敏)하다’고 말하지 않으시면 옛날의 성인(聖人)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韓尙德이 밖으로 나가자 太宗이 말하기를 “한상경(韓尙敬)의 말은 매우 절실하였는데 그의 아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王位에 오른 뒤로 간관(諫官) 중에 韓尙德처럼 경계의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하였다.
後日 太宗이 정사(政事)를 볼 때 韓尙德이 또 나아가 말하기를 “지금 찌는 듯한 여름에 기후가 고르지 않아 하늘이 오랫동안 비를 내리지 않은 채 가을처럼 쓸쓸한 바람만 불고 있습니다. 신은 모르겠습니다만 임금이 失德하여 그러한 것입니까? 지금의 政事가 잘되어 그런 것입니까?”하니, 太宗이 말하기를 “政事의 잘못은 간관(諫官)이 의당 스스로 알 것이다”고 하였다. 韓尙德이 말하기를 “명령을 내리면 政府에서는 받들어 이행하므로 臣等이 비록 들은 바가 있더라도 이미 시행된 뒤였습니다. 전일에 諫官을 政府에다 붙여두자고 청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고 하였다. 太宗이 그에 유사한 어떤 고사(故事)가 있는지 묻자, 황 희(黃 喜)가 말하기를 “건국(建國) 초기에 李文和와 윤사수(尹思脩)가 모두 諫官으로 경력(經歷)을 겸직(兼職)하였습니다”고 하니, 太宗이 말하기를 “이는 좋은 법이 아니다. 經歷이 비록 중한 임무이기는 하나 재상(宰相)에게 예속된 관리이다. 임금의 동정(動靜)과 政事의 득실(得失)을 모두 바로잡는 것은 諫官이다. 그런데 諫官으로서 經歷을 兼職시킨다는 것은 조정을 존중하고 諫官을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韓尙德이 또 말하기를 “근일에 대간(臺諫)이 모두 사안을 말하였다가 파직(罷職)되어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들만 처벌한 게 아니라 서로 의논한 사람들까지 국문(鞠問)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림(士林)들이 간관(諫官)의 문 앞을 지나가지 말라고 서로 경계하고 있습니다”하였다. 또 말하기를 “전하(殿下)의 言行이나 정사(政事)의 시행이 바로 잡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政事는 이미 다스려졌고 백성은 이미 편안해졌다’고 하지 말고 한가하게 혼자 계실 때마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생각 중에 어떤 것이 하늘에 어긋났으며, 시행한 政事 중 어떤 것이 백성의 마음을 거슬렸는가?’하고 스스로 깊히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만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항상 앞으로도 그렇게 될까 생각한다면 화(禍)를 소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의 성현(聖賢)들이 모두 이와같이 하였습니다”하니 태종(太宗)이 말하기를 “좋은 말이다”고 하였다.
한상덕이 물러가지 않자 太宗이 말하기를 “또 말할 것이 있는가?”하니, 韓尙德이 말 하기를“지난 해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는데 유정현(柳廷顯)이 충청도(忠淸道) 관찰사(觀察使)로 있으면서 세금을 많이 매기고 독촉하여 백성을 거둡 괴롭혔습니다. 신등(臣等)이 이미 그를 탄핵하여 문초(問招)하였으나 때마침 사면령(赦免令)을 내린 바람에 처벌하자고 청하지 못하였습니다. 臣은 듣건대,  《大學》에 ‘세금을 많이 거두는 신하보다는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가 더 났다’고 하였는데 지금으로 보면 국가의 재물을 도둑질하는 것은 重한 것 같고 백성의 재물을 많이 거두어들이는 것은 경(輕)한 것 같으니, 古人이 경계한 뜻이 깊습니다”하자, 太宗이 말하기를 “나의 좌우에 있는 승지(承旨)도 말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하고 즉시 도당(都堂)에 명하여 사실을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太宗 11년. 太宗이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에 말하기를 “지금 國家에 일이 없으니 내가 혹한(酷寒)을 당할 때마다 매일 조정에 나와 일을 봄으로써 경등(卿等)과 같이 부지런하여 태만함이 없도록 하고 싶다”고 하니, 韓尙德이 말하기를“政事를 부지런히 보는 것은 제왕(帝王)의 美德이고 안일(安逸)에 빠질까 봐서 古人이 경계하였으니, 비록 일이 없더라도 매일 조정에 나오시는 것은 정말 미덕(美德)입니다”하였다.
太宗이 승지(承旨)들에게 말하기를 “대학연의(大學衍義)의 글 중에 덕정(德政)과 형정(形政)에 대한 先後의 구분과 백성의 고락(苦樂)에 대한 실상을 말한 것이 특히 긴요하다”하고 우부승지(右副承旨) 韓尙德을 명하여 大殿의 벽에다 크게 써서 君臣들로 하여금 보도록 하였다.
太宗 13년. 太宗이 承旨 韓尙德에게 말하기를 “形房 承旨의 임무는 매우 중요하니 경(卿)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고 하니, 韓尙德이 대답하기를 “전하(殿下)께서 하늘을 대신해서 만물(萬物)을 다스리므로 털끝만큼도 잘못이 없으셔야 할 것입니다만, 臣도 밤낮으로 신중히 하여 한 사람이라도 무고(無辜)하게 처벌을 받아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殿下의 德에 누(累)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하니, 太宗이 말하기를 “내가 판결을 잘못 내렸을 경우에는 경(卿)이 숨김없이 직언(直言)하도록 하라”하였다.
太宗 14年 한산부원군 조영무(漢山府院君 趙英茂)가 죽었는데 太宗이 承旨 韓尙德을 명하여 대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世宗 7년. 世宗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태평시대(太平時代)인데도 불구하고 임금의 옷자락을 붙잡고 간절히 간(諫)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 비록 소강(小康) 상태이기는 하나 필시 옛날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의 面前에서 과감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지금 사람이 古人보다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하고 또 말하기를 “한 선제(漢 宣帝)시대엔 안에는 관리와 백성이 편안하고 밖에는 흉노(匈奴)가 번신(藩臣)이라고 일컬었으나 후세의 평론가(評論家)는 화근(禍根)을 만든 임금이었다고 하였다. 宋나라 王安石이 재상이 되어 스스로 나라를 도와 백성을 편안히 하였다고 하였으며, 신종(神宗)도 정신을 가다듬어 治政을 꾀하였으나 후세의 비난을 면치 못하였으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니, 韓尙德이 말하기를 “殿下의 오늘 하신 말씀은 사실 종사(宗社)와 백성(百姓)의 복입니다”고 하였다.
公의 배위(配位)는 이길생(李吉生)의 따님인데 양위묘소(兩位墓所)가 실전(失傳)되고 더욱 公에게는 후손(後孫)이 없어 전(傳)해 오는 문적(文籍)도 살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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